용산철거민살인진압규탄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1. 이명박 정부, 노동시간단축을 말하다

2010년 6월 8일 노사정위 근로시간·임금제도개선위원회는 ‘장시간근로 관행 개선과 근로문화 선진화를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채택했다. 노사정은 이날 합의문에서 2020년 이내에 우리나라 전 산업 노동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을 일본과 비슷한 1천800시간대로 단축하기 위해 단계적 목표를 설정해 노력하기로 했다. 또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용창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동계·경영계·정부를 포함한 범국민 추진기구를 구성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2010년에는 더 이상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러면 그렇지’라는 말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2011년 업무계획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다시 노동시간단축을 들고 나왔다. 신바람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 속에 장시간 노동시간을 줄이겠다며, 2010년 2,111시간에 이르렀던 연간 노동시간을 2012년에는 1,950시간으로, 그리고 2020년에는 1,800시간대로 줄이겠다며 구체적인 타임스케줄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한 구체적 사업으로는 ㅇ 중소·영세기업 실근로시간 줄이기 지원(컨설팅, 보조금 등) ㅇ 유연근로시간제 활용률 제고(탄력적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등 기준법 개정 추진, 모범사례 발굴・확산 등)  ㅇ 휴가 사용률 제고 및 여가문화 선진화(휴가촉진조치 시점 조기화(3월전→6월전) 등 기준법 개정 추진 및 각 부처별 여가 활성화 대책 마련 등) ㅇ 장시간근로 개선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 (장시간근로 개선 노사민정 공동 캠페인 및 근로문화 혁신 운동 전개, ‘장시간근로 개선 가이드라인’(노사정 협의) 제정)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노동시간단축은 노동시간에 대한 유연성을 높이는 한편, 자본(기업)의 비용부담을 줄이는 것을 핵심 축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노동진영의 대응 역시 ‘노동시간단축’ 계획보다는 ‘유연근무시간제’ 비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탄력근무시간제 단위 기간을 확대하고 단시간 상용직을 제도화하면서 시간제 노동을 활성화하는 내용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를 위한 노동법 개악을 저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과 대응은 이명박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고용창출 방식 자체를 겨냥하지 못한다. 물론 진보와 노동진영은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창출 계획들이 ‘질 낮은 일자리’ 혹은 ‘비정규 일자리’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은 매우 정당하다. 노동부가 업무계획에서 밝힌 일자리 창출 방안의 해김은 근무형태 다양화인데, 그 구체적 방안이란 것이 ㅇ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창출과 확산 ㅇ 고용창출형, 세대간 상생형, 일·육아 병행형 등 ‘3대 일자리 함께하기’ 지원 ㅇ 장시간근로 제도와 관행을 개선 (’11.7월부터 20인미만 사업장 주40시간제를 적용하고, 휴가 사용률 제고를 위해 연차휴가사용 촉진조치 시점을 조기화(3월전 → 6월전)하는 한편, 근로시간저축휴가제를 도입하고, 재량근로시간제 적용대상(소프트웨어 개발자, IT 컨설턴트, 애널리스트, 회계사 등)과 탄력적 근로시간의 단위기간을 확대(취업규칙의 경우 2주 → 1개월, 노사합의의 경우 3개월 → 1년)하는 등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리고 이렇게 줄어든 근로시간을 교육․훈련에 사용하여 생산성을 높이도록 일터의 학습조직화와 체계적 현장훈련 등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대학의 주말․야간과정, 시간제 등록도 확대할 예정) 따위들이다.
하지만 진보와 노동진영은 ‘일자리 창출’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고 있다. 질 낮은 대신 질 좋은, 비정규 대신 정규직 일자리 창출을 말하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과연 어떻게 질 좋은 정규직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까? 이에 대한 고민과 대안 없이는 이명박 정부가 만들어내는 질 낮은 시간제 일자리에라도 가서 일해야 하는 현실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2. 일자리 창출, 가능한가?

한국의 2010년 경제성장률은 6.2%이고, 1인당 GDP는 2만 달러를 다시 넘어섰다. 2008년 금융위기를 가장 빨리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한국의 놀라운 경제 상태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고용의 회복세도 완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1년 2월 취업자는 23,336천명으로 전년동월대비 469천명(2.1%) 증가하였다.(통계청, ‘2011년 2월 고용동향’, 20011.3.16) 산업생산․소비판매 및 수출 호조세로 제조업 등 비농림부문을 중심으로 취업자 증가세가 유지되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20대와 30대의 취업자는 계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림 > 취업자 및 취업자 증가율

자료 : 통계청

그래서 아주 단순한 사람들은 20대와 30대 청년 일자리를 늘여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떻게, 어디에서라는 구체적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시간제 비정규 일자리만이 그들에게 돌아갈 뿐이며, 그것도 여성과 고령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거나 40대와 50대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진보진영에서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아니라면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고서도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를 늘릴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이 대표적 방안이다. 어떤 이들은 ‘경기부양’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말하기도 한다. 루즈벨트식 뉴딜정책이나 케인즈식 유효수요 창출 같은 정책을 구사한다면 충분히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대와 30대에게만 질 좋은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방식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청년층만이 아니라 모든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질 좋은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면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질 좋은 정규직 일자리 창출이란 경제성장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잠재성장률이 계속 둔화하고 있다. 2010년 경제성장율이 6.2%라고 하지만 이것은 기저효과에다가 인위적 경기부양조치들의 후과를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잠재성장율은 3~5%대로 추정한다. 이런 성장률 조건에서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이란 진보적인 정권을 세우더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일자리 창출을 고민한다면 성장률을 제고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과 같은 경제 규모와 생산 구조에서 ‘요소투입형 성장’은 적합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인구 증가 자체가 정체하고 있는 상태에서 노동을 더 투입하자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노동의 투입을 늘리지 않고 경제성장을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봉착한다. 노동의 투입을 늘리지 않는 성장이란 결국 ‘생산성 향상’의 방법밖에 없다. 자본진영이 말하는대로 '다양한 혁신을 통한 기술발전이 주도하는 경제성장’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제성장은 필연적으로 경제의 고용유발을 하락시킨다. 경제성장의 결과(산출량)로 고용을 늘리는 방법(공공부문 확대) 외에는 고용을 창출하기 어려운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산업연관표를 보면, 한국의 산업별 고용유발계수는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자본이 주도하는 경제산업체제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식의 둘러대기는 비겁한 방법이다. 진보적인 산업정책을 구사하더라도 성장을 위해 노동의 투입량을 늘리는 방식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그림 > 산업별 고용유발계수 추이
(단위 : 명/10억원, %)

자료 : 한국은행, 2006년 산업연관표(연장표) 부속 고용표

생산성 향상 이야기가 나온 김에 최근 정부와 자본 일각에서 ‘시간외 노동’을 줄이려 시도하고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편에서는 생산의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여가의 확대로 포장되어 언급되고 있다. 생산의 기술적 효율성이 제고되어진다면 그에 따라 필요노동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런 조건에서 시장에 공급해야 할 물량을 늘리지 않는다면 자본은 총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이윤량을 늘리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는데, 지금 한국에서 그런 시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제조업 노동조합 대부분은 ‘잔업과 특근’이 보장되어야 고용이 안정되는 것처럼 반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대응들은 시간외노동을 줄여서 생산을 효율화하는 동시에 여가를 늘리자는 공세 앞에서 거의 무력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3. 노동시간단축, 그 자체를 시도해야 한다

지금 노동조합과 노동자는 생산성 향상에 반대하면서 시간외 노동을 유지하는 방법보다는 기술적 변화를 ‘노동시간단축’으로 곧바로 획득하는 과감하고도 확실한 대응을 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은 더 적은 투입으로도 더 많은 혹은 동일한 산출을 얻는 방법이므로 노동시간을 줄이더라도 충분히 임금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노동의 입장에서는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임금을 유지하거나 감소폭을 최소화하라는 요구를 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와 명분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한다면 잔업만이 아니라 특근까지 과감하게 포기하면서 ‘더 많은 일’보다는 ‘더 많은 여가와 문화’를 선택해야 한다. 이것은 ‘현실가능성’이 있느냐의 차원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어떤 운동을 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성장의 신화에 불을 지피고 국가의 기능을 강화하는 선택을 할 것이 아니라면 생산성이 높아지는 그 결과를 곧바로 노동시간단축으로 요구하고 그것을 쟁취하는 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러므로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정규직 일자리를 주는 것이 노동조합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 질 좋은 일자리여야 하는 것은 맞지만 정규직 일자리일 필요는 없다. 시간당 노동력 대가를 충분히 보장받으면서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인권을 침해받지 않는 형태라면 굳이 ‘특정한 자본에 귀속되는 고용형태’를 지향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정규직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면 법정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그래서 8시간을 일하는 정규직이 아니라 6시간, 5시간 일하는 정규직을 만들어야 한다. MB식 단시간 상용직이 아니라 법정노동시간을 줄이면 정규직이 될 수 있는 노동자들은 더 많아진다. 물론 법정시간을 줄이기 이전에 노사가 협약을 맺어 실 노동시간을 1일 8시간보다 더 줄이는 조치도 충분히 가능하다.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이 그런 요구를 내세우고 투쟁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노동조합으로서는 ‘더 많이 일하는 방법’보다는 일자리가 필요한만큼 ‘더 적게 일하면서 일자리를 나누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자기 존재에 더 적합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임금에 대한 접근은 ‘총액보장’이라는 방법(이것은 개별 기업 자본가들이 자기 몫을 줄이면서 선택해야 할 부분이다.)과 더불어 생활비 절감을 동시에 요구해야 한다. 공공부문을 확충해서 일자리를 늘리는 그런 의미에서의 복지 확대가 아니라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 정부와 사회가 최소 가격으로 제공하는 그런 차원의 복지체제로 ‘생활비용’ 자체를 줄여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것을 소비하기 위해서 더 많이 일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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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금속정책연구원

                                                                               공계진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장)


1. 죽어간 노동자들과 구조조정 저지투쟁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저지투쟁 이후 금속노조는 구조조정 투쟁에서 수세에 처해 있다. 투쟁에서 승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전망제시에도 실패하여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아프지만 쌍용차의 경우 2009년 파업이후 올해까지 14명의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1년에만 3명이 이 세상을 등졌다.

금속노조의 구조조정 저지투쟁이 위력적이지 못하다보니 현장에서는 죽음을 불사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한진중공업 지회의 수십일간에 걸친 크레인 농성 투쟁이 그것에 해당된다.

현재 구조조정 저지투쟁의 국면을 분석해 보면, 쌍용차 조합원들의 연이은 죽음과 한진중공업의 파렴치한 구조조정과 크레인 농성 등으로 자본의 공세에 반격을 가할 수 있는 계기가 형성되어 있다. 즉,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정치권까지 나서서 문제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심지어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조차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이런 계기를 놓치지 않고 한진중공업, 대우자판, 발레오공조코리아의 정리해고를 종식시키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앞의 3사에다 쌍용자동차 지부를 결합시켜 3주간의 상경투쟁을 완강하게 진행시켰다. 그래서 정리해고와 노동자 죽음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여론화시켜내는 성과를 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본의 노동자 죽이기를 종식시킬 정도의 결정적 승리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는 번복되지 않았고, 대우자판 및 발레오공조코리아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더해 금호타이어에서도 정리해고의 칼날을 빼들려 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기 때문에 금속노조는 전열을 가다듬고, 구조조정 저지투쟁을 승리로 이끌어낼 전략을 재수립하고 가열찬 투쟁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된다.


2. 어느 곳에 투쟁을 집중해야 할 것인가?

구조조정은 곳곳에 자행되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한 투쟁 역시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금속노조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금속노조는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금호타이어 투쟁에 집중해야 한다.

쌍용자동차는 이미 구조조정이 진행된 곳이다. 점거파업을 했지만 정리해고를 막아내지 못했다. 그 결과 점거파업 후 2년이 경과된 현재에도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다. 가장 큰 것은 노동자들의 비극적 죽음이다. 게다가 상하이자동차라는 먹튀자본에 매각함으로써 발생한 비극적 상황이 정리되기 전에 또다른 먹튀 자본일 가능성이 큰 인도의 마힌드라에게 쌍용차를 매각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앞서 겪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비극적 상황에 또다시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금속노조는 쌍용자동차 투쟁에 집중해야 한다.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은 한진자본이 필리핀에 해외공장을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한진자본은 오직 이윤극대화를 위해 필리핀 공장을 키우고 국내의 한진중공업은 죽이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것은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와 지역경제 죽이기로 나타났다. 때문에 한진중공업 구조조정 문제를 방치할 경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노동자와 삶과 나라경제를 짓밟는 자본을 응징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금속노조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저지투쟁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 사업장이다. 2010년 자본이 이를 이유로 정리해고하고자 했으나 금타지회의 반대로 600여개 업무(사람)를 외주화하기로 했었다. 2011년 들어서서 금타 지회 집행부가 이를 반대해 나서자 다시 정리해고 칼날을 들이밀려는 기색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들의 잘못을 완전히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무책임한 작태이다. 왜냐하면 금호타이어를 워크아웃에 이르게 만든 것은 금호 자본의 무리한 대우건설 인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하무인도 유분수, 노동조합이 경고파업을 하자 사측은 무기한 직장폐쇄라는 매우 공격적이고, 과도한 조치를 취했다. 이런 사측의 무례한 공격을 초기에 응징, 금호타이어를 정상화시키기 위해서 금속노조는 금타 투쟁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금타는 장기투쟁사업장으로 가지 않도록 조합의 초기 대응이 필요하다.

위에서 든 것 외에 집중해야 할 중요한 이유는 세 개 사업장에서 자행되었거나 자행되고 있는 정리해고를 막아낼 경우 향후 구조조정 저지전선을 조합이 유리하게 끌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3. 투쟁방안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쌍용차, 한진중공업, 금호타이어를 중심으로 어떤 투쟁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를 정리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쌍용차, 한진중공업, 금호타이어의 투쟁은 자본의 잘못으로 발생한 것이고, 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당했을 뿐만 아니라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금속노조가 이 여론을 엎고 결정적 승리를 쟁취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투쟁의 방향은 이 구조조정 저지 투쟁을 지역투쟁, 국민적 투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고 자본과 정권을 압박,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쌍용차의 경우 14명의 죽음을 공론화해야 한다. 14명의 죽음이 쌍용차의 상하이차로의 매각, 먹튀 자본인 상하이차의 부실경영, 부실경영의 노동자책임전가와 정리해고, 파업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에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려내어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자본의 약속불이행을 준엄하게 추궁해 들어가야 한다. 2009년 8월 6일 합의(소위 8.6합의), 즉 1년후 무급자 복직 약속을 조속히 이행할 것을 압박해 들어가야 한다.
이와 더불어 마힌드라 자본으로의 재매각에 대해 폭로해 들어가야 한다. 상하이차로의 매각 못지 않게 졸속으로 진행되었고, 상하이차 이상으로 불투명한 자본, 그래서 상하이차와 같이 먹고 튈 자본이라는 것을 지역과 인터넷 공간에서 퍼트려야 한다. 올해 죽음을 택한 3인은 쌍용차의 마힌드라로의 재매각에 절망했기 때문임을 알려야 한다. 그래서 쌍용차 투쟁에 지역주민 및 국민들이 지지와 격려 더 나아가 낮은 차원이라도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진중공업 투쟁에 대한 지역 여론은 좋은 편이다. 왜냐하면 누가 보더라도 한진중공업 자본의 행위는 노동자를 죽이고, 지역경제를 폐허화하는 파렴치한 짓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 한진중공업 투쟁은 더욱 더 여론의 호응을 끌어내는 방식과 내용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즉, 필리핀 공장을 가동하면서 국내 공장은 구조조정하여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지역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몰고 간 것에 대한 지속적 폭로와 선전을 기본으로 하면서 자본의 비도덕적 행위를 폭로하고 이를 계기로 한나라당과 한진 자본을 압박하는 투쟁을 지역사회와 함께 전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지역의 우호적 여론을 활용하여 지역시민사회 단체 및 진보정당들과 함께 한진자본의 탈세관련 시민감사청구 서명운동을 김해와 부산에서 동시진행하는 것을 적극 추진하는 것이 그 예이다. 물론 지금까지 진행했던 서울 상경투쟁을 지속하고, 그 투쟁에 그런 내용을 담아내는 것은 지속적으로 수행할 필요가 있다. 문제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서울을 왕창 시끄럽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금호타이어 역시 노동자들에게 불리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금호타이어의 문제는 금호 자본이 무리하게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금호타이어가 호남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지역사회는 금호타이어가 구조조정 등으로 약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적어도 그런 여론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 여론을 등에 없고, 이 여론을 더욱 좋게 만드는 방식과 내용의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다만, 금호타이어의 경우 회사가 워낙 강경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동요가 예상되고 있다. 지회의 경고파업에 자본은 직장폐쇄를 단행했을 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을 각개 격파시키고 있다. 이미 500여명이 파업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확약서에 서명한 상태이다. 그래서 금호타이어에 대한 조합 차원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즉, 초기에 발생하고 있는 조합원들의 동요를 극복하기 위해 ‘위원장 순회, 담당임원 배치, 현장순회, 권역별 집회 배치’ 등의 조치가 신속하고도 힘있게 추진될 필요가 있다.


4. 결론을 대신하여
- 함께 살기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노동자들의 목을 베기 위한 해고의 칼날이 날아다니고 있다. 이미 그 칼에 맞아 목이 잘린 노동자들도 있고, 심각한 상처를 입은 노동자도 있으며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그 칼날을 피하기에 급급해 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자본의 이러한 살인행위에 맞서 노동자들이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체의 동력만으로는 살인을 막아내기 힘들어 지역과 사회, 시민과 시민단체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현재 상황은 지역과 사회, 시민과 시민단체들이 노동자들의 요청에 호의적이다. 왜냐하면 자본의 행위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과 사회, 시민과 시민단체들이 갸우뚱하는 것이 있다. 지역과 사회에 존재하는 서민들 역시 생존권 박탈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는데, 노동자들은 그들에 대해 무엇을 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처한 절박성에 비해 지역과 사회, 시민과 시민단체들의 호응이 생각처럼 높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제안을 하고자 한다. 나의 제안의 핵심은 ‘우리 투쟁에 대한 여론의 지지를 받아내기 위한 투쟁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되, 앞으로는 서민대중들이 아파하는 것에 동참하는 활동을 일상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즉, 나만이 아니라 지역의 시민들과 ‘함께 살기’ 전략을 수립하고 일상적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서민생계 지원을 위한 재원마련을 위해 사회적 부의 재분배(예 : 10대 그룹 잉여금의 10%를 사회로 환원)를 요구하고, 원하청이윤공유제(요새 정운찬 전 총리로 인해 부각된 초과이익공유제)를 제기하여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이익을 옹호하며, 부자증세를 실현하고 이 돈으로 의료비 절감, 반값등록금, 공공요금 인하 등을 실시할 것을 주장하고 이를 강력히 추진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내용들을 갖고 진정성있게 시민들에게 다가가면 지역과 사회, 시민과 시민단체들이 노동자들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공동행동, 공동투쟁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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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금속정책연구원

                                                                                                 김영수 (경상대학교)


‘같음’과 ‘다름’은 차이가 너무나 명확하다. 발음이나 의미에서. 이 둘이 서로 차이가 없다고 한다면, 누구든지 황당해 할 것이다. 무식한 사람이구먼! 뭔 소리를 하는 것인가?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 듣더라도 ‘같음’과 ‘다름’ 간에 차이가 없는 이 세상에 대해 한마디 지껄인들 세상이 뒤집어지지는 않겠지.

혼란스럽다. 말 그대로 카오스다. ‘같음’과 ‘다름’이 서로 뒤섞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겠다. 진보와 보수가 어떻게 구분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와 현실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같음과 다름이 드러나지 않는 이 세상을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우긴다. 본래부터 차이가 있었던 ‘같음’과 ‘다름’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모험주의의 수렁에 빠져 드는 느낌, 나를 엄습하는 역설이다.

많은 사람들은 정치에서 ‘차이를 통합’으로 변화시키는 힘, ‘갈등을 봉합’하는 주고받기식 협상력을 소위 정치력 혹은 지도력이라고 말한다. 각종 선거에서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연합세력이 각종 선거에서 승리해야만 하는 민주진보대통합, 혹은 진보세력의 통합만이 사회변혁운동진영의 살 길이라고 진보대통합의 정치력이 판을 정리해 나가고 있다. 통합의 정치가 ‘같음’과 ‘다름’을 선거라는 단 하나의 쓰레기통에 처박고 있다. 그 쓰레기통은 다름 아닌 대리주의 정치의 별동대인데도 말이다.

‘민주진보대통합’의 민주진보는 서로 간에 너무나 달랐던 과거, 특히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하에서 노동자들을 국가폭력으로 대했던 그 당시 정치세력이 행한 다른 정치’가 이명박 정권을 앞세워 서로 ‘같은 정치’로 둔갑하였다. 한미FTA의 주역이었던 그들이, 이명박 정권과는 다르다고 말하면서 이명박 정권의 한미FTA를 반대하는 투쟁전선에 나섰던 ‘같음’의 정치가 역설적이다. 국가폭력으로 노동자․농민들을 살해했던 그들의 정치가 이명박 정권의 국가폭력과 ‘같은 정치’인데도, 노동자․민중이 아니라 서민을 위한 정치에서는 이명박 정권과는 ‘다른 정치’라고 핏대를 올린다. 이명박 정권이 설파하고 있는 서민을 위한 정치와 무엇이 다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다름’의 정치라는 그들의 울림만이 존재한다. 그 울림판에서 소위 제도권의 진보정치세력도 흥에 겨워 어깨춤을 추고 있다.

‘같음’과 ‘다름’의 역설은 ‘복지’에서 정치력의 꽃으로 만개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복지, 소위 박근혜의 복지, 민주당의 복지, 민주노동당의 복지, 진보신당의 복지 등이 함께 춤을 추고 있다. 복지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같음’ 정치가 호탕하게 웃고 있다. 국민의 생활이 고통스러우니 국가가 나서서 그 고통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같음’이 웃는다. 국민을 고통스럽게 했던 국가의 ‘악’에 대해서 모두가 함구하고 국가의 ‘선’만을 의기양양하게 내세우는 것도 똑같다. ‘다름’이 드러나지 않는 ‘같음’의 정치이다. 이런 ‘같음이’ 복지 앞에 서 있는 노동자․민중은 어떤 정치의 복지든 자신의 생활고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좋아할 것이다. 그 복지가 ‘등을 치고 배를 만져주든, 윗 둑을 빼서 아랫 둑을 막든, 노동자․민중들의 척수와 등골을 빼든 자본가들의 초과이익을 빼든’ 상관하지 않는다. 보다 많은 돈을 주는 ‘다름이’를 좋아할 것이다. 국민들이 국가의 돈을 장악하고 있는 지배세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같은 정치’의 역설이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든 충청권 과학벨트입지 구축이든 이명박에게 사기를 당했지 한나라당이나 보수세력에게 사기당했다고 의식하지 않는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역설. 김대중이나 노무현 그리고 그 휘하 세력들은 민주적인데 그들의 폭력 앞에서 그들을 상대로 비판하면서 투쟁했던 세력 때문에 민주적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고 규정해 버리는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역설.

이러한 역설의 한복판에 소위 진보적인 세력이 서 있다. 민주진보대통합과는 다른 진보대통합의 정치도 ‘같음’과 ‘다름’의 역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합의 정치’ 는 ‘다름’의 정치를 인식하고 행동하는 주체로 나서게 하는데 있어서 적지 않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같음’ 속에서 ‘다름’을 드러내는 차이의 정치, ‘다름’ 속에서 ‘또 다름’을 드러내는 차이의 정치. 이것이야말로 노동자․민중이 ‘같음’과 ‘다름’의 역설에 빠져 나와 자신의 정치를 자기가 지배하는 또 다르면서도 진짜로 같은 정치의 주체로 나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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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금속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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